0. 이직후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현재는 유럽에 출장을 왔다.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사는 고속열차에서 잠시 짬이나서 마저 이어 써보는 이직 후기.


1. 1차/2차 전화면접후에 회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가능만 하다면 이 회사로 이직해야겠다는 뭔가 결심같은게 섰다. 면접이 끝나고 받은 피드백이랄까 회사측에서의 반응(곧바도 다음 면접 희망날짜를 묻는다던지)이 너무 좋기도 했고, 나도 본격적으로 다음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면접 준비랄까 거창하게 준비한건 없었는데, 이때까지 쭉 배경아티스트 혹은 3D아티스트로 일했던지라 포트폴리오만 보여주면 됐는데, 이제부턴 TA로 일을 하는거라 내가 했던 일들을 말로 정리해야했다. 예를들어 이 전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최적화를 했으며, 아티스트와 프로그래머 사이에서 어떻게 조율했으며 그 많은 TA의 분야중에서 제일 관심 있어 하며 최근에 공부했던게 무엇이며 등등을 일일히 설명해야 했다. 이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전이 쉬웠던건 아닌데 이젠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면접준비에 덜덜 떨었었다 ㅠ


2. 일주일정도가 지났을까, 온사이트 면접(대인면접)을 보자는 이메일이 왔다. 날짜는 11월 5일 월요일. 일정이 왔는데 9시부터 3시까지였다. 와 이 회사는 면접을 하루종일 보는구나. 괜찮다고 대답을 보냈더니 몇시간 후 비행기표가 왔다. 중간에 회사와 나눴던 모든 대화 및 절차가 매우 매끄럽고 프로페셔널 했다. 이부분도 너무 좋았다.


3. 그와 동시에 다니고 있던 회사가 점점 더 본색(?)을 드러내며 문을 닫을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회사 근처 대학에서 인턴(정확히 말하면 인턴은 아니고 co-op이라는 학생 실습 프로그램)으로 온 학생들이 어느날 갑자기 회사에 나오지 않게 되었는데 아무도 그걸 설명하는 사람이 없었고, 계약직들의 계약이 연장되지 않았다. 여러가지 부분에 최대한 돈을 아끼려는게 보였고(간식이라던가 프로그램 구입이라던가) 팀원들은 "아 우리가 언제든 짤릴수 있겠구나.." 하는 분위기가 되어서 아무도 제대로 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회사에선 그 마지막의 마지막, 사장님이 등장해서 문닫는 날까지 아무말도 해주지 않았다. 


4. 대망의 온사이트 면접! 

회사엔 휴가를 썼다. 이미 팀 대부분이 회사가 문닫을껄 직감하고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다니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도 굳이 언급하진 않았지만 팀원 대부분은 내가 면접 보러간다는걸 알고 있었을것 같다.

캐나다는 커서 나라 내에도 시차가 존재하는데, 내가 살던곳과 새 회사는 +1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면접은 회사에서 오전 9시에 시작하지만 내 시간으로 하면 8시였고, 비행기는 7시 공항에는 늦어도 6시엔 도착해야했다. 공항까지 가는데 30분이 걸린다 해도 5시엔 일어나야했던것..

새벽같이 일어나 전쟁같은 아침을 보내고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금새 도착했다. 우버를 불러서 면접 볼 회사로 향했다.

시내로 들어서니 레스토랑들 사이에 회사 건물이 보였다. 몇달전에 여행 차 들렀던 도시기에 지리가 비교적 익숙했다. 캐나다는 여전히 오래된 건물이 많다. 나라의 역사는 고작해야 100년이 좀 넘은 수준이지만 나라가 세워지기 이전에 만들어진 건물도 여전히 현역으로 사용되고 있다.

엘레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빨간 벽돌의 작은 건물. 1층의 레스토랑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서 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HR(인사팀)직원이 나와 맞아주었다.


5. 회사 입구를 지나 들어간 회의실에는 벽을 덮은 보드 한가득 컨셉아트가 붙어있었다. 그냥 보기만해도 이 게임의 아트 디렉션이 이런느낌이구나를 한눈에 알 수 있을만큼 강렬했다. HR의 안내에 따라 회의실안에서 곧 올 AD를 기다렸고, 잠시후 AD가 등장, 컨셉아트 속으로 들어갈것같이 벽에 붙어 그림을 보던 나를 발견하곤 우리 게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이 후 진행된 면접들은 제법 캐주얼 하게 흘러갔다. 캐나다에 산지도 어언 4년이 가까워져 오니 캐나다 사람들 성격을 조금이나마 알것 같달까. 캐나다 사람들은 친절함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라면 서러워 할 사람들이라 일단은 친절하게 대해주기 때문에 지레 겁먹고 긴장할 필요가 전혀 없다. 

문제는 사람 이름 기억하기... 일종의 안면인식장애 초기증상(?)을 앓고 있는 나로서는 이름과 얼굴을 매치하고 기억하는게 영 고역이다. 근데 이 날 면접에선 일단 9시 기술면접, 10시 첫번째 인성면접 11시 두번째 인성면접 12시 점심면접(?) 1시반 인사팀 면접이 있었다. 그말인 즉슨 한 15명 정도를 하루만에 만나서 떠들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직후 기억했던건 아트 디렉터랑 테크 아트 리드뿐 ㅋㅋㅋ... 


6. 9시 기술면접은 내가 아티스트이기때문에 아트팀이랑 진행되었다. 4명정도의 각 분야의 아티스트가 들어와서 이것저것 질문했다. 

주로 테크니컬 아티스트와 관련된것들. 자세한건 회사의 업무와 관련되기 때문에 적기 어렵지만, 예를들자면, 


A: 이 전 팀에서 주로 어떤 일을 했었냐.

Q: 3D 아티스트로 일을 했었다. 이것저것 (예전 플젝 설명) 작업 했었다. 여기에 TA로 지원한 이유는 3D 업무를 보다보니 기술적인 부분이 필요해서 하다보니 TA업무가 나중엔 많아졌는데, 예전부터 이쪽으로 진출하고 싶기도 했어서 지원하게 되었다.

A: 테크니컬 아티스트로서 관심있는 분야가 뭐냐?

Q: 쉐이더 만드는걸 좋아한다. 이 전 팀에서도 쉐이더 짜는 업무를 많이 했었다.

A: 쉐이더 짤때는 노드를 쓰냐 코드를 쓰냐

Q: 코드를 선호한다. 노드는 복잡해지면 스파게티 괴물이 되어서 알아보기가 너무 힘들다.


이 외에도 간단한 호불호 질문들. 어떤 게임 좋아하냐, 어떤 그래픽 스타일 작업을 선호하냐, 모바일에서 PC로 온 이유는 같은것들을 물어봤었다. 

더 있었던거 같은데 기억이 안남... 미리미리 정리해둘껄 허헣


7. 1차 2차 인성면접은 크게 복잡한건 없었다. 팀 규모가 큰 편이 아니라서 그중에 몇명의 팀원들을 만나보고, 이 사람들이랑 앞으로 일을 잘 해 나갈 수 있을것인지,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는지, 성격이 이상해보이진 않는지 테스트 하는 면접이었다.

1차는 기획팀, 2차는 프로그래밍 팀을 만났는데, 기획팀이 가장 하하호호 웃으면 본 면접시간이었고 프로그래머팀이 제일 경직되서 본 면접이었다.

기획팀때는, 무슨게임 좋아하냐, 보드게임 해본적 있냐, (매직 더 게더링 좋아한다) 매직은 얼마나 했냐, 나도 예전에 해봤는데 이젠 안한다. 혹시 우리 게임에대해 궁금한점이 있냐. 등등. 수다떨다가 시간을 다 보낸 느낌. 

프로그래밍 팀은 팀장급 두명이 들어왔는데 시작부터 딱딱한 분위기에 질문은 최적화에 관련된(인성면접이라며?) 질문이거나 혹시 다른 프로그래머랑 직접 일을 해본적이 있냐, 프로그래밍 지식은 얼마나 되냐, 이러이러한 문제상황이 발생하면 어떡할거냐 같은 질문을 했고, 솔직히 너무 직구로 어려운 질문들을 던져서 어버버버 하다가 면접을 끝낸거 같다.


8. 그리고 점심시간. 아침에 지나쳤던 아랫층 레스토랑에서 고급 버거 (2만원이 넘는 햄버거 ㄷㄷ)를 아트팀과 함께 먹고 (주로 영화나 게임에 대한 수다를 가만 듣기만 햇던거 같다) 윗층으로 다시 복귀. 30분 정도를 처음의 그 회의실에서 원화들 구경하다가 현재 스튜디오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 (그땐 높으신 분인지 몰랐다.. 서양애들의 수평적인 조직구조를 다시 깨닫는 시간) 나타나서 합격했을시의 입사날짜는 언제가 좋냐, 회사에 입사하면 받을 수 있는 연봉은 이정도면 되냐, 복지는 요런게 있다 같은 이야길 했다. 처음 내가 불렀던 연봉보다 더 높여서 불러주셔서 WOW라고 대놓고 말할뻔... ㅋㅋ 그리고 한 2시쯤 모든 면접의 절차가 끝이 났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4시, 시내 백화점에서 옷 구경하다가 공항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오전 HR과 간단한 영상통화를 한 후(면접은 어땟냐, 합격/불합격 통지는 이때쯤 알려주겠다) 회사로 출근했다.


9. 지금도 약간 갸우뚱 하긴 하는데. 캐나다에서 처음 입사한 이전회사나 지금 회사나, 나는 언제나 실력보다는 운으로 회사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합격한 회사들 면접을 봤을때 내 포폴을 "좋아함"을 이 사람들 한테서 느낄 수 있었다. 

면접 본 회사가 이 회사뿐만 아니라 몇군데 더 있었는데도 끝내 합격하지 못한 회사들 한테서는 약간 '사람은 필요한데 이사람이면 될까나..' 같은 느낌이었다면, 합격한 회사들한테선 '우리가 찾던게 요기잇엇넹' 같은 느낌을 받는달까.


10. 일주일 정도가 지나서 합격통지를 받았다. 이메일에는 Offer Letter가 동봉되어 있었고 컴퓨터로 사인만 하면 되는 간편한 절차였다. 받고나서 하루정도 계약서(이사 지원 등)를 읽어본 후 사인을 해서 보냈고, 본격적으로 이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11. 동시에 퇴사 준비도 하기 시작했는데, 이때쯤이 11월 중순이였다. 이직할땐 보통 한국이나 여기나 회사 동료들에게는 떠벌리지 않는게 정석인데, 아무래도 회사를 떠나는 입장에선 아무리 오퍼에 사인을 하긴 했어도 실제 입사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것이기 때문에 조용히 회사에만 퇴사 사실을 알리고 인수인계를 진행하게 된다. 

근데, 나는 회사에조차 다른회사 오퍼에 사인한걸 알리지 않았다. 법적으로 이직 2주전에만 알려주면 되는거고, 입사일은 두달 가까이가 남아있던 상황이어서 조금 나중에 회사에 알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2주가 되기 전, 회사가 문을 닫았다.

사실 회사가 문을 닫기전에 개발중이던 프로젝트가 몇개 있었는데 내 팀을 포함한 모든 팀이 정리되고 대부분의 인원이 돈을 벌고있는 한 팀으로 병합되었다. 그리고 돈버는 플젝을 제외한 다른 플젝들이 접히고 몇개월이 안되던 어느 날. 멀리 바다넘어서 CEO가 찾아왔고, 현재 서비스 되고있는 게임을 마무리 지을 단 몇명만 제외하곤 전부 정리해고 당했다. 18년 11월의 일이었다.

한국에서의 경력이라고 해봐야 4년이 채 안되는 짧은 기간이긴해도 운이 좋아서 한번도 정리해고나 팀이 폭파당한적은 없었는데 이걸 전부 캐나다에서 경험하게 될 줄이야. 이미 백퍼 예상했던 일이었는데도 기분이 이상했다.  


이제 곧 암스테르담 도착 예정이라 일단 여기까지만. 

다음 이야기는 이사할때 있었던 작은(?) 트러블과 이사의 절차 그리고 캐나다 정부에서 주는 고용보험(EE)을 받았던 경험담을 간단하게 적는걸로 마무리 해야겠다.


+ Recent posts